에도의 문화

니혼바시와 관련 있는 사람, 건물, 정보 — 거리 산책을 더욱 즐겁게


미우라 안진

본명은 William Adams(1564~1620년)으로, 일본에 최초로 건너온 영국인. 네덜란드 동양 원정대의 도선사로서 ‘리프데호’에 승선중 1600년에 분고(현재의 규슈 오이타현)에 도착했다. 얀 요스텐과 함께 이에야스와 접견 후, 외교 및 포술의 고문으로 등용되었다. 그 후 하타모토(막부 직속의 무사)가 되어, 안진초(현 니혼바시 무로마치)에 에도의 저택을, 영지로 사가미노쿠니 미우라고우를 하사받아, 일본명을 미우라 안진으로 개명했다. 니혼바시 유력 상인의 딸과 결혼하여 2명의 자녀를 두었다. 나가사키현 히라도에 영국 상관이 설치되자 상관원으로 근무했지만, 영국으로의 귀국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채 1620년에 사망했다. 니혼바시의 안진초는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 마을 이름으로, 옛 저택지에 비석이 놓여 있다.


야요스(얀 요스텐)

본명 Jan Joosten van Loodensteyn(1556 ~1623년). William Adams와 함께 네덜란드 배인 ‘리프데호’로 규슈에 표착,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중용되어 외교 및 무역에 종사했다. 에도성의 해자 내에 저택이 주어져 일본인 여성과 결혼했다. 동남아시아의 통상 허가를 얻은 상선을 타고 무역을 하던 중 배가 좌초되어 익사했다. 에도의 저택 부근은 그의 이름을 따서 야에스가시라고 이름 붙였고, 도쿄역 부근에는 야에스라는 지명이 전해지고 있다.


마쓰오 바쇼

imasia_6948303_M

마쓰오 바쇼 동상

일본을 대표하는 하이쿠 시인으로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1644~1694년). 1672년에 29세의 나이로 에도에 와서, 니혼바시 혼오다와라초(현 니혼바시 1초메, 무로마치 1초메)의 잉어를 상납하던 도매상 스기야마 켄수, 통칭 ‘고이야’의 집에 머물렀다. 마쓰오 바쇼는 에도의 하이쿠 시인들과 교류, 수행하여 1678년에 ‘소쇼'(전문적인 하이쿠 시인)가 되었다. 1680년, 고이야 소유의 잉어 활어조 막사를 개조하여 만든 암자로 주거지를 옮겼다. 이 암자는 원래 ‘하쿠센도’라고 불렸지만, 구석에 심은 파초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져 1681년 ‘파초암’이라고 개명하고 아호도 ‘파초’로 하였다.


니혼바시 다리와 고사쓰바

1603년에 세워졌다고 하는 니혼바시 다리는 에도 시가지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대화재가 일어날 때마다 피해를 입어, 에도시대만 해도 10회 전반소 및 노후화를 포함하여 12회나 새롭게 가설되거나 복원되었다. 1806년의 기록에 의하면 다리 길이 51m, 폭 7.8m, 교각은 3열 8측, 용재는 느티나무 등의 단단하고 결이 촘촘한 나무가 사용되었다. 남쪽 다릿목에는 고사쓰바가 놓여져, 중요한 법령이나 명령이 이곳에 고시되었다. 또한 고사쓰바의 맞은편에는 주군을 죽인 살인범이나 살인 미수, 여범 승려 등 중죄인을 처벌하는 사라시바가 설치되었다.


도키노카네

SONY DSC

도키노카네

1626년 에도의 마을에 최초로 설치된 니혼바시 혼고쿠초의 종. 대대로 에도성 내의 종을 울리는 일에 종사했던 쓰지 겐시치의 저택 내에 종루가 설치되었다. 그 후,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1700년에 저택 뒷편의 약 39m 크기의 공터에 종루를 건축하였다. 종지기의 수입은 410개 마을의 각 가구마다 소정의 금액을 징수하여 조달했다. 현재 니혼바시 고덴마초 1초메의 짓시공원에는 1711년에 주조되었을 때의 종이 전시되어 있다.


나가사키야

에도 초기에 나가사키에서 혼고쿠초 3초메로 이주하여 약재상을 운영했던 나가사키야 겐에몬의 저택. 1609년부터는 ‘나가사키 통상 면허’에 대한 헌상품을 바치기 위해 에도를 방문하는 네덜란드인의 단골 여관이 되었다. 저택은 구로베이 담장으로 격식이 느껴지는 혼진 여관 구조의 2층 건물이었다. 네덜란드인이 머물고 있을 때에는 적백청의 3색 휘장을 내걸었다. 1858년에는 외국 서적의 판매소로도 지정되었다. ‘에도의 데지마’라고도 불릴 만큼, 에도에서 서양 문명과 교류할 수 있는 귀중한 장소였다. 현재 무로마치 4초메의 신니혼바시역 옆에 ‘나가사키야 유적’에 대한 설명판이 있다.


시바이마치 유적

니혼바시의 후키야초와 사카이초(현재는 닌교초)에는 에도를 대표하는 가부키의 3대 공연장 가운데 이치무라자, 나카무라자가 있었다. 또한 이 마을들에는 소연극이나 일본 고유의 인형극 등이 열리는 극장들이 줄지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근처를 연극 마을이라고 불렀다. 연극 마을에는 찻집뿐 아니라, 요리점, 음식점, 잡화점, 서점 등이 있어, 막이 열리는 아침 6시경부터 저녁 5시경까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 옛 극장 터(현 니혼바시 닌교초 3초메 2~7번지)에 시바이마치 유적의 해설판이 있다. 또한 니혼바시와 교바시 사이에 있던 나카바시난치에는, 1632년에 니혼바시로 이전할 때까지 나카무라자가 있었다. 현재 그 터(현 주오구 교바시 3-4)에는 ‘에도 가부키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후쿠토쿠 신사

20141117word_31

후쿠토쿠 신사

에도시대로부터 700년이나 더 거슬러 올라가 9세기 후반 무렵에 창건되었다고 하는 이나리 신사. 예제는 5월 9일. 전설에 의하면 도쿠가와 2대 쇼군 히데타다가 정한 당시의 신사의 부지는 333평이나 되었지만, 근처의 상인들이 잠식하여 부지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 땅이 옛날에는 후쿠토쿠무라라고 불렸고, 그것이 사호(社号)의 유래라고 전해지고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2대 쇼균 히데타다 등도 존경하고 숭배했던 곳이다.


미쓰이 기념 미술관

三井本館

미쓰이 기념 미술관

 

17세기 후반에 에치고야를 창업한 미쓰이 다카토시를 선조로 하는 미쓰이가가 대를 물려 온 귀중한 문화재를 보존 및 공개하기 위해 개설한 ‘미쓰이 문고 별관’. 수장품으로는 에도의 유명한 화가인 마루야마 오쿄가 미쓰이가를 위해 그린 ‘설송도’, 국보 2건을 포함한 도검류, 노가쿠의 곤고 우쿄가가 보존해 온 노카쿠용 탈 등이 있다. 차제구 컬렉션이나 세계 유수의 우표 컬렉션도 수장되어 있다.
http://www.mitsui-museum.jp/english/english.html (영어)


일본은행 화폐 박물관

에도시대 일본의 실물 화폐는 물론, 동서고금의 화폐도 전시 되어 있어 화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입장 무료.
http://www.imes.boj.or.jp/cm/info/kr_leaflet.pdf


오즈 사료관

17세기 중반, 니혼바시 오덴마초에 창업한 이세 상인인 지물상 오즈 상점의 사료관. 에도시대의 고문서, 상업 사료, 근대 이후의 화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http://www.ozuwashi.net/english


에도 도쿄 박물관

에도와 도쿄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사료나 문물을 전시 및 해설하고 있는 박물관. 에도 문화를 보다 깊게 이해하고 싶은 분은 꼭 견학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edo-tokyo-museum.or.jp/english/ (영어)


후카가와 자료관

에도의 민중 생활을 이해하기 위한 형식의 자료관. 민중의 전형적인 주거 형태였던 ‘나가야’와 그 생활 환경이 재현 및 전시되어 있다.
http://www.kcf.or.jp/fukagawa/ (일본어)